생일을 쓸쓸하지 않게 보내는 법 


일찍이 어느 현인(이라지만 1회 만남으로 끝난 소개팅남)께서 말씀하셨다. 

“생일이나 기념일, 이런 거에 집착하면 인생이 피곤해지거든요.”


그럼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무료함보단 피곤함 쪽을 택하는 인간형. 일 년에 한번 찾아오는 생일을 어떻게 보내야하나, 치열하게 고민한다. 나이 먹는 게 반가운 일도 아닌데 뭘 그리 챙기느냐는 마음의 소리는 ‘별일 없는 인생, 가끔은 이벤트가 있는 게 좋지않아?’로 덮어둔다. 생일은 1월, 그래서 매년 12월 초가 되면 크리스마스부터 생일까지 이어지는 연말연시  플랜 짜기에 돌입한다.


목표는 하나다. 생일, 그날 하루만은 불행하다는 느낌에서 있는 힘껏 도망칠 것. 물론 별 이벤트가 없는 생일을 많이 보내 봤고, 큰 타격감은 없었다. 평일일 경우, 다른 날과 똑같이 회사에 출근했다가 일부러 한 시간쯤 늦게 퇴근(러시아워를 피하기 위해+오늘 특별한 날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어필), 귀갓길에 가장 당기는 메뉴를 사들고 집에 돌아와 천천히 저녁 식사를 마치면 한밤중이다. 주말일 경우, 가능한 한 밖에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고칼로리 음식과 함께 넷플릭스를 몰아보는 ‘공식 치팅 데이’로 삼으면 그만이다. 단, 몰아보기를 하던 드라마 시리즈가 딱 끝나고 화면이 까맣게 멈춘 순간을 맞이할 때, ‘오늘 생일인데 뭐하고 있나’ 쓸쓸함이 무방비 상태의 마음을 치고 들어올 염려가 있다. 위험 신호다.  


연인의 효용은 생일에 빛을 발한다. 함께 보낼 누군가가 정해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름을 덜은 듯 연말이 홀가분해진다. 정해진 상대가 없을 땐 생일 파트너를 물색한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던 30대의 어느 날, 절친이 한 명도 곁에 없는 외국 도시에서, 게다가 히터 난방으로 입술 쫙쫙 갈라지는 건조한 기숙사 방에서 생일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비교적 가깝게 지내던, 하지만 서로 생일을 챙길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던 친구에게 일찌감치 물어봤다. “O월 O일(나의 생일)에 약속 있니?” “없는데 왜?” “응. 그럼 그날 저녁 같이 먹자.” 


아무 날도 아닌 날처럼 패밀리레스토랑에 들러 밥을 먹고, 긴자의 한 카페에서 작은 조각 케익을 나눠먹으며 선언했다. “나 오늘 생일이야!” 친구는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냐 놀라면서도 특별히 부담스럽지는 않은 눈치였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오던 긴자 뒷길의  싸늘시원했던 바람이 기억난다. 불행하거나 외롭다는 느낌에 사로잡히지 않고 무사히 하루를 보냈다는 안도감, 그때부터 생일은 ‘시절 절친’과 보낸다는 나만의 루틴이 생겨났다. 


시절 절친은 같은 부서에서 최근 가까워진 누군가일 경우도 있고, 어쩌다보니 그날 약속을 잡게 된 취재원일 때도 있었다. 돌아돌아 생일 앞에 선 20년 지기 베프일 때도 있었다. 그게 누구건 일찌감치 약속을 잡아두면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고(대문자J), 생일 아침 어김없이 도착하는 엄마의 문자에 당당히 답할 수 있게 된다. “사랑하는 딸~, 생일 행복하게 보내.” “응. 재밌게 지낼게 걱정마슈.” 함께하는 친구가 선물 같은 걸 준비하지 않아도, 식당 종업원이 초를 밝힌 케익 같은 걸 들고 오지 않아도 완전 괜찮다(당연히!). 생일이라는 민망한 시간을 함께 넘겨주는 것, 그게 가장 큰 선물이니까. 


코로나19로 누군가와 만나는 일 자체가 범죄 행위 같았던 시기, 위기가 찾아왔다. 약속은 범죄모의였으므로 생일 파트너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특파원으로 다시 도쿄에 살게 되며 맞은 첫 생일, 다행히 주말이어서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마음의 자양강장제로 삼고 있는 드라마 ‘중쇄를 찍자’를 몰아봤다. 너무 일찍 시작한 것이 문제였을까. 저녁 5시쯤 드라마가 끝나자 불쑥 찾아온 마음의 헛헛함을 극복하는 데 실패, 바로 백화점으로 향해 찜해두었던 고가의 겨울 코트를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두 번째 생일엔 그 사이 절친이 된 같은 사무실 직원과 한 달 전부터 약속을 잡아놓고, 장소를 꼼꼼히 물색했다. 미리 신청하면 디저트 접시에 초콜릿으로 “Happy birthday”를 새겨주는 코스를 예약했다. 아침부터 힘주어 메이크업을 하고 사무실로 출근해, 조금 이른 시간에 함께 퇴근해 저녁을 먹을 계획이았다. 그러나 생일 당일 아침, 전날 저녁 식사에 동행했던 이에게 문자가 왔다. “어제 밤부터 아파서 새벽에 병원에 가 검사해보니 코로나 양성이다.ㅠㅠ 너도 검사해 봐. 미안.”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 검사하니 다행히 음성. 환호를 지르며 마스크를 고쳐 쓰고 파티 장소로 달려갔다. 


일본에서 보내는 마지막 생일엔 한국에서 친구가 도착했다. 성인이 된 후 여러 번 생일을 함께 보내준 리얼 절친이다. 생일날 오후 도착한 친구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여행 가방에서 주섬주섬 보온병을 꺼냈다. “일본엔 미역국이 없을 것 같아 새벽에 끓였어.” 음 도쿄엔 한집 건너 한국 식당이 있고, 마트에서도 레토르트 미역국을 살 수 있지만 감동이구나 친구야.


참고로 일본인들은 생일날 장수하라는 의미에서 소바 등을 먹는다고 한다. 


생일을 낀 주말을 함께 보낸 친구가 월요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돌아갔다. 밤 늦게 회사에서 돌아와 침대 위 이불을 들춰보니, 친구가 놓아둔 그림책이 한 권 놓여있었다. 제목은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 프랑스의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고티에 다비드와 마리 꼬드리 부부가 쓴 책이다.


내용은 곰이 새에게 보내는 긴 편지다. 둘은 북쪽 나라에서 만나 우정을 나누지만 겨울이 찾아오자 새는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나버린다.(철새였던 것이다) 하루하루 떠난 새를 그리워하던 곰은 새를 만나기 위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세상 끝’으로 출발한다. 첫 번째 편지는 이렇다.


나의 새에게, 


햇살이 따뜻한 남쪽 섬에는 잘 도착했니?

벌써 네가 보고 싶구나. 

너와 함께 보낸 지난여름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하지만 넌 겨울이 오기 전에 서둘러 떠나버렸지.

왜 우리는 해마다 헤어져야 할까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세상 끝으로 향하는 곰.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숲을 지나고, 바다를 건너다 뱃사람이 던진 그물에 걸리기도 한다.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어떤 날은 목마름을 참으며 사막을 가로지른다. 그런데! 어렵사리 도착한 세상 끝엔 친구가 없었다. 역시 곰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지 못한 새가 추위를 무릅쓰고 북쪽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난 곰과 새가 서로를 끌어안는 장면.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시간을 기억해. 

기다려 내가 갈게, 

너에게 갈게. 


친구가 그림책 사이에 끼어놓고 간 편지엔 익숙한 글씨로 “생일 축하해. 나의 뒷면을 봐주는 사람이 되어줘서 고마워”라고 적혀있었다. 

찔끔찔끔 울며 잠을 청했다. 

최고의 생일이었다. 



글 요로코비

현직 기자, 어쩌다보니 일본에서 5년 반을 지냈다. “인생에 한번은 크게 기지개를 켤 날이 온다”는 ‘기지개론’을 설파하며 띄엄띄엄 부지런하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