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인터뷰는 2025년 7월 5일 토요일 밤 11시에 진행됐다. 국회 인준 표결을 열두 시간쯤 앞둔 시점이었다. 김민석은 촬영팀의 주문대로 정신과 상담실처럼 꾸민 소파에 비스듬히 누웠고, "가만히 보니까 편한 게 아니라 거의 고문이네"라고 투덜대더니 곧 "정신과 치료처럼, 아우 좋아"라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옆에는 '재미'라는 이름의 인형이 놓여 있었다. 대화는 81분간 이어졌다.
녹취는 그 뒤 1년간 공개되지 않았고, 그가 총리직을 떠나는 지금 공개한다. 『주역』은 처음을 캐묻고 끝을 살피는 일을 원시요종(原始要終)이라 불렀다.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은 "어떤 총리로 기억되고 싶은가"였다.
1. 내일 총리가 될 사람
Q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내일 총리가 될 사람입니다. 20대에 학생운동을 하고 감옥에 갔다가, 20대에 정치를 시작해 일찍 정치인이 됐고, 그러다 오래 — 한 18년 — 정치를 쉬었습니다. 다시 돌아와 총리로 지명된 사람이고요. 최근에는 계엄을 포함해 몇 가지를 맞췄더니 직업을 바꾸면 어떠냐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Q 18년은 깁니다. 그동안 뭘 하셨습니까.
외국에도 가고, 공부도 하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NGO도 하고, 다큐멘터리 감독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시간에 제가 제일 좋아했던 저의 다른 이름은 '김 감독'이네요.
2. "총리가 별 볼 일 없더라고"
Q 솔직히, 총리가 하고 싶었습니까.
솔직히 얘기하면 저는 총리라는 것에 대해 별로 생각이 없었습니다. 총리가 별 볼 일 없더라고요. 제가 아는 총리들은 감동적인 경우가 별로 없었어요. 고리타분하고, 대화해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효능감이 정치를 하는 저에게조차 별로 없었습니다. 국회에서 질문하면 답하고, 우리는 어렵지 않게 비판하고 — 존중심이 별로 생기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명받고 돌아다녀 보니까, 총리가 높은 거더라고요. 사람들이 굉장히 높게 생각해요. 아, 이게 이렇게 중요한 건데 왜 별 볼 일 없게 생각했지.
Q 그럼 뭘 해내야 성공입니까.
계엄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정치와 국회의원이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내 문제를 푸는 대리인일 수도 있다는 감각이 사람들에게 생긴 겁니다. 실제로 국회의원에 대한 신뢰도가 수치로 올라갔어요. 마찬가지로 "국무총리가 이런 것도 있네, 이런 일도 하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네"라는 관념의 변화가 생기면, 저로서는 성공입니다. 어떤 총리가 되겠다고 따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스타일대로 — 전력투구하고, 전속력으로 달리고, 동시다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솔직하게 사람들과 대화하려고 합니다.
"국무총리가 이런 일도 하네, 라는 관념의 변화가 생기면 나로서는 성공이다."
3. 터널
Q 서른둘과 서른여섯에 최연소 의원, 서른여덟에 최연소 서울시장 후보. 그 시절의 정치와 지금은 뭐가 다릅니까.
젊어서는 빨리 달리는 정치를 했던 것 같습니다. 공백을 지나 돌아와서는, 바르게 하는 정치가 좋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속도보다 방향을 더 중시하게 됐어요. 꼭 속도를 중시했던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빨리 달렸던 겁니다. 방향이 뭐냐고 하면 — 원칙과 정도, 그리고 국민과 역사입니다. 당장 잘 모르겠을 때는 국민을 보고, 더 길게 모르겠을 때는 역사를 생각합니다.
Q 가장 힘들었던 때는요.
남들이 볼 때는 많고 길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다 잊어버렸습니다. 다만 이런 경험은 있습니다. 남들이 "이제 터널을 벗어났다"고 생각하던 시간이, 제게는 진짜 터널의 시작이었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힘들었다, 아니었다를 평가하기가 어렵습니다.
"남들이 터널을 벗어났다고 보던 시간이, 내게는 진짜 터널의 시작이었다."
4. 문제를 푸는 사람
Q 계엄을 예측했다는 얘기부터 해보죠.
저는 어떤 분야든 보면 거기서 정책이나 입법으로 갈 걸 찾아내는 걸 좋아합니다. 계엄이 보이면, 계엄을 어떻게 미리 막지를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계엄을 하기 어렵게 만들고, 해제를 쉽게 하고, 계엄에 저항한 군인들을 보호하는 류의 법을 만들었습니다.
Q 그 밖의 입법 이력도 짚어주시죠.
경로당 주 5일 점심을 법으로 만들어 전국에 적용시켰고, 대학생 천원의 아침밥, 한국에서 아주 큰 난제였던 간호법, 수술실 CCTV도 풀었습니다. 길고양이를 케어하는 분들의 어려움을 듣고 정부와의 만남을 어레인지한 일도 있고요. IMF 때는 한국 정치인 중 아마 전무후무하게 미 상공회의소(암참) 회원이 돼서 외국인 투자 기업 규제를 푸는 일을 했습니다. 통상적인 진보·보수를 넘어서 보편적 범용성을 갖고 하는 걸 좋아합니다. 저는 문제를 해결하는 걸 좋아해요. 제 스타일은 동시다발과 속도입니다.
Q 법안만이 아니라 당의 제도도 설계했죠.
한국에서 대통령을 뽑을 때 이미 하나의 제도로 정착된 5 대 5 국민경선을 제가 만들었습니다. 최근에는 국회의원들만 뽑던 원내대표를 당원들도 최소 10% 이상 투표할 수 있게 하자는 '텐퍼센트 룰'을 제안했고요. 그때마다 늘 생각한 것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실천 가능한 현실적 방안입니다. 제가 저를 규정할 때 제일 좋아하는 말이 '현실적인 이상주의자', 또는 '실현 가능한 최상의 진보'예요. 저는 고리타분한 거 싫어하고, 안 된다고 얘기하는 거 싫어하고, 항상 되는 방법을 찾아내는 걸 좋아합니다. 그게 일정하게 행정가적 기질 아닌가 — 총리 업무를 한 달 파악해보니 어색하지 않았던 이유일 겁니다.
5. 리버럴
Q 김민석을 한 문장으로.
오해의 소지는 있지만 — 나는 리버럴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저를 만든 한 사람을 꼽으라면 아버지인데, 아버지는 제게 전적인 자유를 줬습니다. 우리 세대에 드문 케이스예요. 아버지가 제게 한 유일한 말은 "쟤가 알아서 할 거다", 그리고 "알아서 해라"였습니다. 공부해라도 없었어요. 그 리버럴함이 제 근본에 있습니다. 내 방식으로 생각하고 내 결론을 내리는 것에 익숙하고, 자신이 있고, 틀려도 밀고 가는 것. 그래서 일하다 보면 저보다 젊은 20대 30대가 오히려 나보다 생각이 굳어 있다고 느낄 때가 솔직히 많습니다.
Q 그 리버럴함의 부작용은 없습니까.
단점이 그겁니다. 누가 옆에서 잡아주지 않으면 끝없이 달려가요. 그래서 늘 얘기합니다 — 아니다 싶을 때는 언제든지 편하게 아니라고 얘기해라. 나는 내 생각이 서면 일단 달려가니까, 알아서 말려라.
6. 쾌활한 토론가 — 이재명에 대하여
Q 이재명 대통령을 한 문장으로.
쿨한 사람. 정확히는 '쾌활한 토론가'입니다. 이재명이 가장 이재명다울 때, 장점이 극대화될 때는 토론할 때입니다. 기본적으로 밝고 명랑하고 쾌활한 사람이에요. 토론할 때 농담을 하고, 그걸 자기가 끌어가고, 이견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이견에 따라 자기 생각을 바꾸는 것도 거부하지 않으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걸 즐기는 사람. 저도 그런 측면을 좋아합니다.
Q 두 사람은 그동안 어떻게 일해왔습니까.
당에서 대표와 정책 책임자로, 대표와 선거 책임자(상황실장)로, 대표와 수석 최고위원으로 — 사실상 당무의 상당 부분을 대리하는 관계까지, 단계를 밟아왔습니다. 방식은 늘 같았어요. 방향의 일치를 합의한 뒤 상당 부분을 제가 자유롭게 하고, 컨펌 받을 건 반드시 받는 것. 그렇게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 관계를 축적하면서 서로의 스타일을 알고 비교적 편하게 느끼게 된 겁니다.
Q '친명'이라서 가능한 관계 아닙니까.
억지로 맞추려는 방식의 로열티로는 그런 관계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방향이 비슷하고, 토론으로 그 방향을 맞추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당원 주권 정당에 대한 철학이 비슷했고, 선거에서는 둘 다 목표를 보수적으로 잡았고, 정책에서는 중도 진보 정당의 현실주의적 접근을 둘 다 취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 제 정치적 사부가 김대중인데 —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포괄하지 않던 중도층, 일부 보수층까지 포괄하는 이른바 '덧셈 정치'의 지향이 일치했습니다. 기질도 비슷해요. 현장에서 문제에 부딪히면서 풀어내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Q 이제는 대통령과 총리입니다. 뭐가 가장 위험합니까.
소통입니다. 이제는 상대적으로 떨어진 공간에서 일하면서 맞춰야 하기 때문에 소통의 정확성과 긴밀성을 잘 보완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소통에 미스테이크가 생기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커집니다. 훨씬 신중해야죠. 다만 큰 점에서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노력해가면 됩니다.
"억지로 맞추는 로열티로는 그런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7. 국가 전략가
Q 20대 때 정치인의 꿈이 뭐였습니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마지막까지 비교적 영혼이 맑았으면 좋겠다는 것. 둘째는 한국에서 정치하다가 유엔 사무총장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것.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적 정치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Q 그 꿈은 아직 유효합니까.
지금 저보고 유엔 사무총장이 되라고 한다면, 저는 유엔 개혁을 요구할 것 같습니다. 안보리에서 강대국들이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질서를 바꿔서, 총회와 안보리의 상호 비토 체제로 가자고 제안할 겁니다. 오랫동안 생각해온 거예요. 한류도 자주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일본의 겨울연가, 중국의 대장금을 통해 한류가 갔는데, 이제는 한국에서 뜨면 한류가 되는 세상이 됐어요. 한국의 눈으로 바라보는 미국, 중국, 한반도가 어느 나라 분석가의 눈보다 정확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겁니다. 예전에는 아무리 훌륭한 생각을 해도 한국이 끌고 갈 수 없었지만, 지금은 한국이 얘기하면 귀 기울이는 시대가 됐어요.
Q 한국 정치는 지도자 복이 있었다고 봅니까.
나름 있는 나라라고 봅니다. 결이 다르지만 박정희도 세계의 흐름을 꿰뚫는 감각이 있었고, 이승만도 그때의 국제 관계를 꿰뚫었고, DJ도 그렇고요. 독일에서 세계의 젊은 리더들과 토론하다가 아프리카에서 온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 한국의 행운은 그래도 비교적 똑똑한 독재자들을 가졌던 거라고. 무지한 독재자보다는요. 물론 그 과정 과정에 무지한 독재자도 있었고, 이번 윤석열 같은 경우는 아주 대표적인 무지한 독재자에 해당하죠.
Q 그래서, 결국 무엇을 위한 정치입니까.
저를 한편으로 리버럴이라고 규정했는데, 또 한편으로 저는 국가 전략가입니다. 제가 뭐가 되느냐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아요. 지금까지 정치를 버틴 이유는 딱 하나, 국가 전략에 대한 관심입니다. 이재명 대통령과도 국가 전략의 비전을 문화국가로 잡는 얘기를 해본 적이 있어요. 우리 당으로 보면 DJ가 문화정치를 했죠. 반도체는 삼성이 주도할 수 있고 바이오는 생태계가 끌고 가지만, 문화는 전 국민이 생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세계가 어떻게 가야 하고 국가가 어떻게 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세계 누구와도 토론할 마음이 있고, 그 토론의 콘텐츠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이 가진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뭐가 되느냐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다. 정치를 버틴 이유는 딱 하나, 국가 전략이다."
8. 에겐남, 노래방, 여장
Q MBTI가 뭡니까.
본 것 같긴 한데 못 외워요. 내 걸 몰라요. 난 기본적으로 그런 걸 잘 못 외웁니다.
Q 에겐남입니까, 테토남입니까.
그게 뭐예요? (설명을 듣고) 남성과 여성을 그렇게 딱 구분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상남자는 아니지만, 비교적 구질구질하지 않고 꽁하지 않으니까 남자 쪽 아닌가. 야, 이거야말로 객관적인 얘기를 들어야지.
Q 모험을 즐기는 편입니까.
겁이 되게 많은데, 결과적으로 보면 도전을 잘 피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학생운동도 무서워서 안 하려고 했어요. 1년 동안 데모를 구경만 하다가 어느 날 맨 뒤에 선 게 시작이에요. 그런데 몇 걸음 가다가 앞이 전경한테 막혀서 줄이 뒤집혔고, 그 바람에 첫 줄이 됐습니다. 근데 좋더라고요. 길도 잘 보이고, 도망가기도 좋고. 그때부터는 항상 맨 앞줄에 섰어요.
Q 수배 때 여장을 하고 도망쳤다는 일화가 있던데요.
도망 다녀야 하니까요. 후배의 여자친구가 미대생이었는데, 그날의 분장은 여자였어요. 자기 엄마 옷에다 브래지어에다 가발에다, 별걸 다 했네. 성공적으로 나갔는데 그날따라 말을 시키는 바람에 걸렸어요. 말 못하는 척하려고 했는데 계속 시켜가지고. 20대 때는 피부가 희어서, 조금 단장하면 어렵지 않았어요.
Q 노래는 잘합니까.
겸손의 수작을 떨지 않고 솔직히 얘기하면, 좀 잘 부르는 편이에요. 합창반 출신이거든요. 예술의전당 무대에도 섰어요. 18번은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하고 박중훈의 '비와 당신'. 몇 달에 한 번씩 집사람한테 같이 노래방 가자고 꼬시는데, 안 가면 밤늦게 혼자 가서 딱 30분 하고 옵니다. 일종의 몸을 정렬하는 거죠.
Q 한 소절만 들려주시죠.
노래는 없던 걸로 합시다.
Q 몇 시에 일어납니까.
보통 4시쯤. 의식으로는 늘 '열 시엔 자야지' 하는데 자는 건 열두 시 전후고요. 제일 좋아하는 게 잠인데, 시간이 없어서 못 잡니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맞아요. 원래 저는 전혀 새벽형 인간이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됐어요.
9. 에필로그 — 오늘 새벽에
Q 연설문도 직접 씁니까.
20대에 학생회장에 나갔을 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말과 글은 제가 썼습니다. 앞으로 계속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죠. 시간이 바빠지면 가능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누가 그러더군요 — 정치인은 자기 글을 자기가 쓰는 정치인과 그렇지 않은 정치인으로 나뉜다고. 나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고, 자기가 나아갈 길이 정리됩니다.
Q 이재명 대통령에게 영상 편지를 보낸다면.
고생 많으십니다. 그래도 대통령이 돼서 일을 할 수 있게 되니까 얼마나 좋아요. 이제는 개인 차원이 아니라 역사적 사명 — 위대한 나라, 위대한 국민, 위대한 정부, 위대한 대통령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과거보다 더 진보하는 것을, 전에 가졌던 지도자들보다 더 위대해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김대중보다 더 위대한 대통령이 되시기를 바라고, 제가 최선을 다해 도울 겁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시간이 흘러 총리직의 말미에 섰을 때, 어떤 총리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새벽을 깨운 총리. 새벽에 일어나서 나라를 위해 생각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일도 시작하는 — 그런 총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늘 문득 해봤어요. 오늘 새벽에.
인터뷰는 2025년 7월 5일 밤, 81분간 진행됐다. 다음 날 그는 인준을 받았다.
프로필 박스 기사
김민석
1964년생.
전 서울대 총학생회장.
4선 국회의원.
1996년, 서울 영등포을에서 국회에 입성했다.
당선 당시 만 31세.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했다.
긴 공백 끝에
2020년, 18년 만에 국회로 돌아왔다.
2024년, 비상계엄 가능성을 제기했다.
같은 해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2025년, 이재명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지명됐다.
“새벽을 깨운 총리가 될 것.”
총리 선임 전, <더뉴페이퍼>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2026년 6월, 총리직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의 정치는 다시 당으로 향했다.